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더니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렸어요.
호랑이는 시골마을 외딴 집에 살진 말을 잡아먹으려고 산에서 어슬렁어슬렁 내려왔어요.
호랑이는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런 동정이 없자 말을 매둔 헛간 문을 열고 어슬렁 기여들었어요.
“응아, 응아-”
갑자기 집의 어린애가 자지러지게 울었어요.
어머니는 어린애를 달랬어요.
“얘, 울지 말라. 자꾸 울면 호랑이 온다.”
호랑이는 깜짝 놀랐어요. 호랑이는 대가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퉁사발눈을 떼룩 굴리며 중얼거렸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어떻게 돼 내 온 걸 안담? 오늘 밤엔 각별히 조심조심해야겠군.’
호랑이는 어슬렁거리며 구유 쪽으로 가서 말고삐를 물어 끊으려고 했어요.
“응아, 응아-”
애가 자지러지게 계속 울자 이번에는 이렇게 달래는 소리가 들렸어요.
“왜 자꾸 우니? 자꾸 울면 이젠 어비(어베) 온다.”
그러자 어린애가 울음을 딱 그치는 것이 아니겠어요.
호랑이는 무서워졌어요.
‘저 아줌마가 내 온다고 해선 계속 울던 어린애가 어비 온다니 무서워서 울음을 딱 그치지 않는가. 어비란 거 진짜 무서운 놈인 모양이지.’
호랑이가 중얼거리면서 놀라서 투레질하는 말을 슬슬 매만져 달래며 고삐를 풀려고 했어요.
삐꺼덕.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 헛간에 들어서지 않겠어요.
그러자 몸채에서 어머니가 어린애를 달랬어요.
“봐라. 자꾸 울던게 헛간에 어비 왔다.”
호랑이는 깜짝 놀랐어요.
‘어비?!’
호랑이는 깜짝 놀라 말고삐를 놓고 한쪽 구석에 가서 숨어 어비란 놈의 동정을 살폈어요.
어비는 살금살금 어둠 속을 더듬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이구, 이걸 어쩌는가?’
호랑이는 숨을 딱 죽이고 까딱하지 못하고 서 있었어요. 어비는 먼저 말을 매만져보다가 그만두고 이쪽 구석으로 다가와 호랑이 배를 슬슬 매만졌어요.
어비는 살진 호랑이 배며 잔등이며 매만져보았어요.
“이 놈이 더 살졌구나.”
어비란 놈은 중얼거리더니 훌쩍 호랑이 잔등에 올라탔어요.
깜짝 놀란 호랑이는 “어비야!” 하고 고함치면서 헛간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훌쩍 뛰여나갔어요.
어비는 잔등에서 고삐를 찾자고 손으로 더듬었지만요. 헛수고였어요.
호랑이는 잔등에 어비가 매달려 있는지라 너무 놀라 똥물을 쫠쫠 내쏘면서 단숨에 수림 속을 30리나 도망쳤어요.
기실 어비란 놈은 열댓살난 꼬맹이 꾀보였어요.
날이 푸름해 오자 꾀보는 자기가 타고 나온 것이 살진 말이 아니라 얼룩 호랑이라는 것을 발견했어요.
‘이걸 어쩌나?’
꾀보는 한참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호주머니를 뒤적거렸어요. 호주머니에 전날 신을 기울 때 쓰던 송곳이 만지웠어요.
‘됐어.’
꾀보는 송곳을 꺼내 틀어쥐고 호랑이 잔등을 쿡쿡 찔렀어요.
“아이구, 아파라. 어비님, 왜 이럽니까? 제발 살려 주십시오.”
“어비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나 하느냐?”
“예, 예. 금방 그 집 어린애가 내 온다고 해선 계속 울더니 어베님이 온다고 하니 울음을 딱 끄치지 않겠습니까? 그걸 봐도 어비님은 산중대왕인 나보다 훨씬 무서운 놈, 아니, 아니, 무서운 님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꾀보는 송곳으로 호랑이 잔등을 푹푹 찔렀어요.
호랑이 잔등엔 피가 즐벅했어요. 호랑이는 너무 아파 애원했어요.
“아이구, 그저 말하십시오. 왜 짜꾸 찍습니까?”
꾀보는 송곳으로 자꾸 찌르면서 호통쳤어요.
“이건 새끼손가락으로 찌른 거야. 뒤만 올려다보면 이렇다. 알았어?”
“아이구, 아파 죽겠습니다. 군자는 말로 하지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비님은 산중대왕보다 더 센 걸 보면 군자겠는데 그저 입으로 말하고 자꾸 찌르지 마십시오.”
그러나 꾀보는 계속 송곳질을 하면서 다짐을 땄어요.
“이제 말을 고분곤분 듣지 않으면 이렇게 새끼손가락으로 찌르는게 아니라.엄지로 쿵 찍어 죽여버릴테야.”
“아이구, 제발 엄지로 찌르지 마십시오. 제가 뭐든 다 들어줄테니까.”
꾀보는 저 앞 수림 속에 큰 구새통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다짐을 땄어요.
“저 고새통나무 앞에 가서 내가 내릴테야. 눈깔을 딱 감고 까딱 말고 서 있어라. 내가 됐다고 하기 전에 눈을 뜨기만 하면 엄지로 찍어 죽여벌테야. 알만해?”
“아가, 아파라, 예, 예. 분부대로 눈을 딱 감고 가만 있겠습니다. 어비님,”
“이제부터 눈을 딱 감아라.”
“네, 네.”
꾀보는 호랑이가 눈을 딱 감은 것을 보고 호랑이 잔등에서 사르르 내려 구새통 안으로 쫑드르르 달려들어갔어요.
그런데 음흉한 호랑이는 어째 잔등에서 내리는 어비가 하도 작은 것 같아 가만히 실눈을 해가지고 발자욱 소리를 따라 가만히 되돌아 보았어요.
그런데 구새통으로 들어가는 어비 발뒤축 밖에 보지 못하였어요.
“어째 어린애 발뒤축 같은데.”
순간 호랑이는 복수심이 욱 치밀었어요. 그러나 어베가 을러메던 일을 생각하고 호랑이는 구새통을 멍해 보다가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에이, 괜히 어비를 잘 못 건드렸다가 엄지에 찔려 죽으면 어떡해? 새끼손가락으로 찔러놓은 것도 아파 주겠는데. 그만두자.”
호랑이는 맥없이 수림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곰을 만났어요.
곰은 머리를 수깃뜨리고 꼬리를 늘여뜨리고 마주 오는 호랑이를 보고 이상해 물었어요.
“너 어째 기분 썩 좋지 않은 거 같구나. 아무 것도 사냥하지 못해 굶은 게 아니냐?”
호랑이는 머리를 수깃하고 “오늘 참 재수 없어.” 하고 오늘 어비한테 당한 일을 쭉 얘기 했어요.
그러자 곰은 무릎을 탁 쳤어요.
“어비는 무슨 놈의 어비야. 오늘 아무 것도 잡지 못했는데 그 놈을 우리 잡아먹자.”
호랑이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그만둬라. 산중대왕인 나도 어쩌지 못했는데. 네라구 무슨 용 빼는 수가 있겠느냐? 괜히 엄지손가락에 찍혀 죽지 못해서.”
그러나 곰은 호언장담했어요.
“겁쟁이라구. 이제껏 우리 산중에 우릴 당할자가 그 누구였느냐? 어비란 놈이 그렇게 세단 말은 듣다 첫소리야. 그 놈이 얼마 센가 우리 둘이 힘을 합쳐 한번 해보자.”
곰의 말에 호랑이는 마지못해 따라나섰지요.
시꺼먼 아가리를 쩍 벌린 구새통아구리를 보고 호랑이는 어비가 당장 뛰쳐나와 엄지손가락으로 찌를가봐 겁이 났어요. 량미간을 찌프리던 호랑이는 곰에게 이런 제의를 했어요.
“얘, 넌 날지 못하니까. 이 구새통 어귀를 지켜라. 내 구새통 우에 날아올라가 그 놈을 사로잡을게.”
곰은 다른 생각이 없이 “그러마.” 하고 선선히 대답하고는 두 팔을 쩍 벌리고 구새통을 떡 막아 끌어안고 서 있었어요.
호랑이는 그때라고 구새통 우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당장 어비를 잡아먹을 상했어요.
한편 꾀보는 구새통 안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어요.
“이걸 어쩐다? 호랑이와 곰이 련합공격을 하면 죽을게 뻔한데.”
호랑이에게 물려도 정신을 바짝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고 꾀보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가를 궁리를 굴리고 또 굴렸어요.
그는 구새통 아구리를 두팔로 안고 떡 버티고 서 있는 곰의 배를 송곳으로 푹푹 찔렀어요.
곰은 너무 아파 뒤로 벌렁 나자빠지면서 고함쳤어요.
“어비! 날 죽인다!”
호랑이는 구새통 우에서 뛰여내리면서 피가 랑자한 곰의 배를 보고 물었어요.
“어비한테 찔렸지?!”
그때라고 꾀보는 호통쳤어요.
“네놈들, 이제 엄지손가락으로 찔러 죽여버릴테다?!”
“어이쿠!”
“어비야!’
호랑이와 곰은 질겁해 수림 속으로 줄행랑을 놓았어요.
한참 후 꾀보는 호랑이와 곰이 자취를 감춘 것을 확인하고 구새통에서 살그머니 나왔어요.
“허허, 제 방귀에 놀라 도망친 우둔한 놈들이라구야. 힘만 세면 산중대왕질을 하는가 하느냐? 흥!”
호랑이와 곰이 그렇게 겁나 하던 어비-꾀보는 송곳을 쳐들고 피씩 웃더니 살금살금 수림 속으로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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